『조선미술』(1957-1967)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다. 이제까지 드물게 부분 활용되어 왔다. 이 글은 기존 논의와 달리 간행본 모두를 범위로 삼아, 경남․부산 지역 월북미술가에 관한 실증적 구명이라는 목표 아래 이루어지는 첫 논의다. 모두 아홉에 이르는 역내 월북미술가 가운데 기웅을 대상으로 삼았다. 첫째, 기웅(1912-1977)은 근대 초기 신교육자며 첫 사회주의 여성 항쟁가인 김해 출신 어머니 우봉운과 스님으로 살았던 아버지 기태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을유광복 뒤 좌익 미술 활동을 하다 투옥, 경인년전쟁 발발로 풀려나 복무하다 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다. 이 글에서 기웅의 출생과 관련해 두 사실을 밝혔다. 출생지가 경상남도 김해읍이라는 북한 쪽 기록은 어머니 가계를 자기 출신의 정통성으로 윤색한 데 따른 결과다. 형으로 알려진 기의백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웅의 본명이다. 둘째, 『조선미술』에 담긴 기웅의 작품 바깥쪽 활동은 아홉 군데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을 빌려 기웅은 월북 뒤 평양에 살면서 체제 편입에 성공했음을 암시 받는다. 『조선미술』을 빌려 이름만 알려진 대표작뿐 아니라 새 작품 다섯 편, 제목만 알려진 두 편을 더 찾을 수 있었다. 실재가 확인된 기웅의 작품은 열두 편이다. 기웅의 작품을 두고 이루어진 평가 담론은 일곱 차례 보인다. 그들은 두 쪽에서 이루어졌다. 전쟁기 작품 「상봉」의 거듭되는 대표성 회고다. 다음으로 이른바 혁명 전통과 천리마 시대라는 북한 사회주의 현실주의 미술의 요구에 힘껏 맞물려 들었던 노력에 대한 평가다. 기웅은 비평문을 세 편 내놓았다. 이들은 사회주의 현실주의 미학이라는 원칙과 규범에 충실했던 기웅의 입장과 작가적 정체성을 대변해 주는 지표다. 『조선미술』로 볼 때, 기웅은 월북 뒤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61년 12월을 끝으로 몸을 감춘다. 카프계 문학예술인의 제거와 맞물리는 걸음걸이인 셈이다. 기웅을 불러낸 이 글에 이어 나머지 경남․부산 월북미술가 여덟 사람에 관한 구명도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기 바란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