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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마약류 생산 및 밀매의 발단 -1945-1959년 대남혁명 활동을 중심으로-

The Origins of North Korea’s Drug Production and Trafficking ―From the Perspective of North Korea’s Revolutionary Strategy toward South Korea, 1945~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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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관형
소속 및 직함 사단법인 엔케이워치
발행기관 한일군사문화학회
학술지 한일군사문화연구
권호사항 3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67-100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마약   #초국가적 조직범죄   #국제범죄   #공작원   #대남혁명   #이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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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1945년부터 1959년까지 북한의 대남혁명 활동 차원에서 수행된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류 생산 및 밀매의 발단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의 대남혁명이란 북한 체제가 중심이 되어 한국을 흡수해 김씨 일가가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남혁명은 북한의 국가적 목표로서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현재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북한은 대남혁명의 전술적 도구로서 마약류를 생산하고 밀매해 왔다. 본 연구의 2장에서는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류 생산 및 밀매 발단 배경에 대해서 고찰한다. 북한 당국이 마약류를 대남혁명의 전술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던 대외적 요인으로는 중국과 소련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소련은 냉전 시기 세계혁명 차원에서 글로벌 마약 전략을 수행했고,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마약류 생산과 밀매를 실행했다. 그리고 대내적 요인으로는 분단 이후에도 6・25 전쟁 전까지 공개・비공개적인 남북교역 루트가 존재했고 북한은 이 루트를 마약류 밀반출 창구로 활용했다. 한편 북한의 대표적인 공작기관인 연락부는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대량의 아편과 헤로인 생산 기술인력을 지원받아 마약류들을 생산했다. 그런데 이 시기까지 북한 당국은 아편과 모르핀은 생산할 수 있었으나 독자적인 헤로인 정제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의 3장에서는 1945-1959년까지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류 밀매 주요 사건들과 특징들을 다뤘다. 1945년 8월 이후부터 1959년까지 주요 밀매 주체는 북로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산하의 연락부, 민족보위성 정찰국(정찰총국의 전신), 내무성 정치보위국(국가보위성의 전신)이 담당했다. 북한은 1950년대에 들어서 대남혁명 전술을 비합법적 방법보다 합법적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특히 합법적인 방법으로서 한국 내 정당 설립과 지도부를 장악, 통제하고자 했고 이를 위한 재정원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이었다. 1945-1959년까지 사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북한 당국은 마약류를 대남혁명이라는 정치적 목표 외에도 사회・경제・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했다. 또한 이 시기 북한의 마약 문제는 초국가적 조직범죄(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이하 TOC)의 특징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 당국 주도의 마약 범죄는 한국, 일본, 홍콩 등 2개국 이상에서 계획, 실행되었고 해당 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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