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은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을 기점으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발히 교류해나갔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절대적인 미학으로 받아들였던 지난 시기의 화단과 달리, 북한미술계는 중국미술의 발전 과정을 이전보다 주목하기 시작했다. 북경과 상해에서 열린 《조선조형예술전람회》는 양국의 교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전람회를 위해정종여는 중국에 방문하여 다양한 일정들을 소화했다. 당시 각계 인사들이 정종여를 환대했으며, 그는중국 미술가들과 조선화와 중국화의 민족적 형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또한 정종여는 중국을 둘러보며 ‘미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 주목했다. 그는 중국미술계가 인민사상계몽과 정서교양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측면을 높이 평가하여 이를 북한에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정종여의 중국 방문은 1950-1960년대 조선화의 ‘민족적 형식’을 논할 때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조선화 화가들은 조선화의 형식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하여 새 시대에 어울리는 형식을 구축하고자노력했으며, 그 형식을 소련이나 동유럽, 중국의 미술가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했다. 이처럼 조선화 화가들은 조선화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변용할 가능성을 끊임없이 검토하고자 주변을 의식하고 있었고, 특히 지리적으로 근접한 중국은 민족적 형식을 구축하는 데에 모범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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