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자신의 초기 회화에서 최연해는 인물이나 풍경 등 대상을 그릴 때 그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그리는 입장을 취했다. 그 과정에서 이 화가가 문제 삼은 것은 무엇보다 주관화의 방향과 정도(강도)였다. 인물을 그릴 경우 그 인물의 진실성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인물 표현을 통해 화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가가 문제였다. 즉 정도(강도)가 문제, 곧 “과연 어디까지 덧붙이거나 덜어내야 그것은 내 것으로 되는가?”가 문제로 부상했다. 1941년에 발표한 글에서 최연해는 ‘생활환경에서 오는 화욕의 표현’을 자기 예술의 지향점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작가의 개성, 창작욕, 감각의 표현 등을 모티프 인용에 대한 양심적인 태도와 연동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현실과 화욕, 주관과 객관 양자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 또는 힘을 배분하는 일이 화가의 과제로 부상했다. 이러한 태도는 최연해의 후기 회화, 즉 해방 이후 북한에서 그가 제작한 회화에도 변함없이 나타났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1950년대 후반 최연해의 풍경화는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감각적인 측면과 현실에 대한 화가의 감정과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이념적 측면에서 유동하고 진동하는 회화였다. 이러한 양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용 과정에서 객관과 주관, 특수와 보편 사이에서 유동하던 초기 북한미술의 상황을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