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45년 8월 15일부터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삼아, 일본 신문의 재일조선인 관련 기사 자료에 주목하여 그 전체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전후 일본의 신문 미디어는 다양한 이념 지형과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GHQ의 검열과 정치 환경의 변화 같은 요인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출발한다. 일본의 언론 자유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연합국사령부가 실시한 보도 통제는 제한된 정치적 입장과 태도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이슈 역시 이 같은 환경을 반영하면서 기사화된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와 함께 일본 미디어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의 출발을 알리게 된다. 일본 신문에게 분단 상황이 고착화된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외교적 측면을 넘어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의 향후를 포함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라인’과 북한으로의 ‘귀국사업’, 그리고 ‘한일협정’으로 이어지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 간의 정치적 행보 속에서, 때로는 적극적인 관여자로, 때로는 극렬한 반대자로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온 재일조선인을, 일본 신문이 대체로 ‘개인’보다 그 개인이 속한 집단적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일본 신문의 ‘정치성’은 점차 재일조선인을 향한 다양한 잣대로 가시화된다. 보도량과 기사 제목의 선정성, 동일 사건을 바라보는 논점의 차이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일본의 진보와 중도, 보수를 대표하는 주류 신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재일조선인이라는 대상에게 자신들의 ‘정치성’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재일조선인에 관련된 의제들이 다양한 주체와 복잡하게 뒤얽히는 사안들 속에서 다층적으로 설정되는 시대가 찾아온 것으로, 일본 신문에는 그 매커니즘과 구체적인 양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향후 보다 정치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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