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박영준은 세 번의 ‘자기 증명’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 친일행적으로 인한 ‘자기 증명’이다. 수필을 통해 자신이 일제강점기 때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자신의 친일행적을 소거한다. 더불어 일제에 부역했던 「환향」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자신의 친일행적을 정당화한다. 두 번째 ‘자기 증명’은 좌익 활동을 했던 경험 때문에 발생한다. 박영준은 ‘중간파’로 명명될 정도로, 적극적인 좌익 활동을 하진 않는다. 그는 그 과정에서 해방 이후 새로운 문학적 방향 탐색하는데, 백철의 “신윤리”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은 이후 인간적 고뇌와 관계를 고민하는 휴머니즘적 작품을 발표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 괴뢰군의 포로로 잡혀 노역했던 경험 때문에 발생한 ‘자기 증명’이다. 이는 「노예의 노동생활」에서 보여준 반공 수사를 통해 진행된다. 이후 종군작가단에서 근무하게 되며, 종군작가단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이 당시 《전선문학》의 ‘선전’ 활동으로 인해 적극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하진 못하지만, 「용초도근해」를 통해 소박한 휴머니즘의 성취를 이룬다. 이처럼 박영준은 해방 이후 일관되게 인간의 고뇌를 담은 휴머니즘적 방법론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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