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 관계는 북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간과해서는 안 될 키워드이다. 해방 후 북한의 국가 건설은 소련의 적극적 지원 아래 이루어졌다. 소련의 고문들이 북한의 정치에 깊이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소련의 시스템이 북한에 이식되었다. 그 시스템들이 현재까지 북한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소련은 북한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련대사관과 소련계 한인 정치인들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련의 창구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북소 관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북한의 경제 노선을 비판하고 평화공존 정책을 부과한 소련의 태도가 형제국에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북소 갈등은 1950년대 이후 북한 정치에 역동성을 불러온 요인이었다. 1956년 8월경 김일성 개인숭배에 반대한 여러 정치인들이 그 갈등 관계를 이용해, 소련의 지지를 등에 업고 조선로동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조선로동당 지도부는 이제까지 자신들을 후원해온 소련과의 결별까지 염두에 두고, 사회주의 강국들 틈 속에서 “주체”라는 이름 아래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1950년대 이후 북한의 국내 정치와 대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북소 갈등의 배경과 전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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