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81년에 설립된 韓國漢文敎育學會가 創立 4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학회 설립의 기반인 각 대학의 漢文敎育科 중에는 조만간 학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중등교육에서 漢文科의 位相은 상당히 嚴酷한 현실에 처해 있다. 이런 시점에 그 始源으로 돌아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우리 교과에 기대했던 바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근대전환기에 日帝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급기야 말과 글을 빼앗겼던 우리 민족은 光復과 더불어 신속하게 일본어를 몰아내고 한국어를 부활시켰다. 한국과 북한이 재빨리 언어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기부터 한국어의 문법 체계를 체계화하고, 표준어를 査定하고, 맞춤법을 통일시키고, 한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등, 말글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헌신한 학자들의 노력이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적 연원은 대체로 한힌샘 周時經(1876∼1914)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이후 남과 북에서 한글전용론을 앞장서 주장한 학자들은 대체로 周時經을 淵源으로 하며, 광복 이후 남한에서 모든 논쟁은 崔鉉培(1894∼1970)가 軍政廳 學務局의 編修局長에 취임하여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과서 편찬을 주도하면서 교과서의 한글 전용 및 가로쓰기와 풀어쓰기를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최현배의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趙潤濟(1904∼1976)의 주장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그 뒤로도 漢字 폐지 여부를 두고 국어학자와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지속적인 갈등이 벌어졌고, 정권에 따라서는 이 문제를 정권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데 이용하려 하기도 하였다. 특히 1969년 三選改憲과 1972년 維新 憲法을 관철시켰던 박정희 정부에서는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이라는 稀有의 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하면서도, 그 반대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漢文科를 국어과에서 독립시키고 중등 교육에서 필수 교과로 자리 잡게 하였고, 이에 따라 漢文敎育科가 창설되었다. 곧 한글전용과 중등학교에서의 漢文 교육은 애초부터 相補的 관계로 설정되었던 것이다. 또 중등교육에서 漢文科를 독립시키고, 대학에 漢文學科를 창설하고, 동양고전과 우리 한문학 유산을 전문적으로 번역시키고, 이런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漢學者를 우대해야 한다는 의론이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학자들로부터 먼저 나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무리 부분에서는 한글전용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된 지금의 시점에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중ㆍ고등학교에서 漢文科의 위상이 강화되어야 함을 주장했고, 마지막으로 “한글=국어”라는 뿌리 깊고 폭 넓은 오해에 대해서 변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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