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나눔 아카이브 8000만

전체메뉴

학술

  • HOME
  • 논문
  • 학술

6·25전쟁 시기 ‘세균전’ 설 제기 과정과 내막

The Process of ‘Biological Warfare’ Allegation and Behind-The-Scenes Accounts during the Korean War

상세내역
저자 전예목
소속 및 직함 한양대학교
발행기관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학술지 군사
권호사항 (12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42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한국전쟁   #6·25전쟁   #북한   #세균전   #중국인민지원군   #감염병   #전염병   #심리전   #선전   #소련   #냉전   #미국   #전예목
원문보기
상세내역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 중국, 소련이 미국에 대한 ‘세균전’ 설을 제기하였을 당시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의 내막을 한국, 중국, 영국, 소련, 미국에서 생산된 문서, 서신, 회고록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1951년과 1952년의 ‘세균전’ 설 제기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다. 1951년 5월 8일 북한의 외무상인 박헌영의 성명을 통해 ‘세균전’ 혐의가 대외적으로 처음 제기되었다. 1952년에는 중국 주도 하에 소련과 북한이 적극 호응하면서 ‘세균전’ 혐의에 대한 대규모 선전이 있었다. 세 국가의 지원을 받는 세 개의 조사단도 만들어졌다. 논문의 두 번째 부분은 공산 국가들이 제시하였던 ‘증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아본다. 이것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위생부장이었던 우즈리의 회고록과 소비에트의 문서로 입증되었고 이 문서들은 ‘세균전’ 설의 기원이 중국이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증거의 조작이 ‘세균전’ 설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소련은 각국의 이익을 위해 ‘세균전’ 혐의를 이용하였다. 중국은 ‘세균전’ 설을 통해 소련으로부터 군사적, 의료적 지원을 받고자 하였으며 소련은 미국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한국전쟁을 지연하고자 ‘세균전’ 설을 이용하였다. 이 연구는 새로운 사실의 제시와 문제 제기가 제한적이었다는 한계가 있으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첫째, 1951년과 1952년 ‘세균전’ 설의기원이 각각 소련과 중국으로 서로 달랐다는 점을 밝혔다. 둘째, 1952년과 1953년을 비교하였을 때 세균전’ 설에 대한북한 지도부의 입장이 부정적으로 변화하였음을 밝혔다. 셋째, 1952년 중국 지도부는 ‘세균전’ 설이 거짓임을 알았으나 하부 조직에는 이를 알리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