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영화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권력, 체제유지에 있어 가장 대중적으로 동원된 수단이었다.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개정에서부터 1980년 김정일의후계체제 확립이전까지 북한은 적극적인 영화교류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영화교류는 1980년제6차 당 대회 이후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체제가 마무리 되면서 공세적으로 변모하였다. 즉1980년대는 ‘자주, 친선, 평화’라는 대외문화교류전략이 채택됨으로써 북한의 영화교류가 더욱적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의 영화교류는 1986년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쵸프에 의한 개혁정책, 개방정책이 추진되었고, 1989년 공산주의 전선이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4년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은 위기상황에처하게 되었다. 이때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1990년 제2차, 1992년 제3차, 1994년 제4차 평양영화축전의 개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시기 북한의 영화교류는 수세적 교류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로 공산주의 정체성이혼란에 빠지게 되고 교류 대상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북한의 영화교류는 자연스럽게 수세적 형태로 전환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영화교류는 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교류의 성격이 형성,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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