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나눔 아카이브 8000만

전체메뉴

학술

  • HOME
  • 논문
  • 학술

한국 간첩영화의 성격변화와 반공병영국가의 형성 1962~1968

A Change of Characteristics of Spy Films and the Formation of Anticommunist Garrison State in South Korea, 1962~1968

상세내역
저자 정영권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발행기관 인문학연구원
학술지 인문학연구
권호사항 (5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765-794
발행 시기 2020년
키워드 #간첩   #간첩영화   #국제첩보영화   #영화장르   #반공병영국가   #국책성   #상업성   #대중성   #1960년대   #정영권
원문보기
상세내역
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1960년대 한국 간첩영화의 성격변화를 반공병영국가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는 간첩영화가 증가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1950년대 중반 이후 간첩영화는 맥이 끊겼으며 5․16 이듬해인 1962년에 새롭게 부활했다. 그러나 간첩영화는 하나의 독립적 장르라기보다 광범위한 범죄/액션/스릴러의 한 하위장르로 존재하고 있었다. 즉, 간첩영화는 단일한 장르가 아니라 범죄영화와의 교차지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간첩영화의 플롯은 범죄영화와 중첩되었으며 신문․잡지 등에서도 미스터리, 액션, 스릴러라는 용어로 통용되었다. 이러한 영화들은 반공이라는 국책적 성격보다는 상업적인 대중영화의 성격이 더 강했다. 한편, 귀순간첩의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 역시 이 당시 간첩서사의 일부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덜하고 이념성이 더 강한 이러한 영화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간의 혈육의 정이나 이산가족 문제 등을 제기했다. 따라서 애초의 반공선전의 목적을 배반하는 감상적 민족주의의 성격 또한 갖고 있었다. 1965년 007 시리즈의 대대적인 흥행여파 속에서 남파간첩이나 귀순간첩 소재의 간첩영화는 동남아를 배경으로 하는 국제첩보영화로 전환되었다. 이 경향은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코리안 제임스 본드’들을 탄생시켰다. 이 첩보영화들은 간첩영화보다 더 상업화한 것으로서 가족이나 민족 같은 국내적 문제를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이클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략 1965년~1967년 사이에 유행을 마감했다. 같은 시기 한국은 6․3항쟁과 베트남 파병을 거치며 강력한 반공병영국가로 진입하고 있었다. 특히 1967~1968년에는 북한의 대남침투가 극에 달하면서 안보위기가 논구되었다. 이런 점에서 007영화의 영향 하에 있던 첩보영화들은 당면한 국가적 위험을 재현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다시 국내를 무대로 한 간첩영화의 재등장을 야기했다. 비록 일본을 무대로 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이는 동남아를 무대로 한 영화와는 성격이 달랐다. 동남아 배경 영화들이 단순한 볼거리로 장소를 재현한데 반해, 일본 배경 영화들은 북한의 재일교포 북송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그리고 있었다. 1960년대 전반기의 간첩영화들이 혈육의 정에 입각한 감상적 민족주의를 노정했다면, 후반기의 영화들은 이념 때문에 가족과 민족도 배신하는 패륜적 인물로 간첩을 재현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반공주의의 최대 증폭시기인 1968년, 반공병영국가에 부합하는 간첩형상이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