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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부의 3‧1운동 기념과 표상 - 『로동신문』(1946~2019)을 중심으로 -

Memorial and Representation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March 1st Independent Movement -Focusing on the contents of 『Rodong Sinmun』(194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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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원
소속 및 직함 대림대학교
발행기관 국학연구원
학술지 동방학지
권호사항 (19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23-356
발행 시기 2020년
키워드 #북한   #3‧1운동 기념   #로동신문   #3‧1운동 표상   #‘3‧1인민봉기’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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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북한 정부의 3‧1운동 기념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어 2019년까지 계속된 것을 『로동신문』의 사설과 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러나 기념을 통해 표상하는 기억의 정치는 각 시기마다 정권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하였고, 기념의 강도와 규모도 변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3‧1운동의 의의를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한 건국사업의 표상으로 강조했다.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의 현실에서 3‧1운동 기념은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국해방전쟁’에서 인민의 애국적 헌신성이 3‧운동의 정신임을 표상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는 ‘3‧1인민봉기’라는 용어가 등장하였고, 1960년대 이후 3‧1운동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표상은 ‘인민봉기’가 된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의 지도와 항일무장투쟁의 우월함이 본격적으로 강조되었다. 1970년대 3‧1운동 기념에서 주체사상의 영도에 의한 외세 배제의 주체적 통일 강조되었다. 1980년대는 한미군사훈련 비판하는 외세 반대와 민족자주권 회복의 기억문화로 3‧1운동이 소환되었고, 3‧1운동이 평양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김정일 집권 이후에는 기념문화가 전체적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표상의 맥락에서 3‧1운동의 민족자주 정신이 미국에 대한 평화보장체계 수립 요구로 강조되었다. 또한 일본에 대해 ‘종군위안부’ 문제 등 일제 식민지배의 죄악에 대한 국가적 보상 문제를 처음 언급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항일유격투쟁에서 김일성가의 3월 1일 기억문화를 이중적으로 배치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정권의 3‧1운동 기억과 표상은 정권의 의도에 따라 변하였으나, 항일 독립운동으로서의 속성은 대외적으로 민족자주권과 통일의 현안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지속되었다. 그래서 1960년대 이후 『로동신문』의 3‧1운동 기념 사설 제목에는 ‘통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남과 북 각각의 정부에 의한 3‧1운동의 기억문화는 정권이 주도하는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였다. 하나의 사실에 각각 다른 역사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3‧1운동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는 연구와 학술교류,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역사의 기억문화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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