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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 삼국 분국설의 구상과 파급

Conception and Effects of the Theory of Bunguk(分國說) of Samhan and the Three Kingdom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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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위가야
소속 및 직함 성균관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사학회
학술지 사학연구
권호사항 (13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89-124
발행 시기 2020년
키워드 #김석형   #분국설   #임나일본부설   #한일관계사   #북한의 역사학   #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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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963년 북한의 김석형에 의해 처음 제기된 삼한ㆍ삼국 분국설이 구상된 계기와 학적 배경, 구사한 학문적 방법론, 그리고 그 학설이 한국 학계에 미친 파급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김석형은 1963년 「삼한 삼국의 일본 렬도 내 분국(分國)들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1966년 『초기조일관계연구』라는 단행본을 통해 삼한과 삼국이 일본 열도에 식민지 국가를 건설했다는 이른바 분국설을 제시하였다. 분국설은 문헌사학과 고고학, 그리고 신화학 등 다방면에서의 치밀한 검토를 통해 제기된 것이었고, 김석형 개인이 아닌 북한 학계의 집단적 토의의 산물로도 볼 수 있었다. 분국설 구상의 배경에는 1960년대 북한 학계의 학적 경향성이 있었다. 분국설이 제기되기 전 북한 역사학의 당면 과제는 ‘고대’의 사회경제 구성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는 1962년판 『조선통사』(상)에서 삼국 이전의 고조선과 부여ㆍ진국을 고대노예제사회로 삼국시대를 중세봉건적사회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서술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961년말 새로운 연구주제로서 ‘대외관계사’가 설정되고 있다. 이 시점을 전후로 ‘고대’의 사회경제 구성에 대한 논쟁이 마무리되고 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설정이 분국설 구상의 기반이 되었다. 이 시기 김석형의 글에서는 분국설 구상에 김일성의 교시가 영향을 주었음을 추정케 하는 내용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김석형은 “우리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일반적 합법칙성”에 입각하여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려 하였고, 이러한 일반적 합법칙성을 한일 관계사 연구에 적용하는 수단으로 고고학 자료의 이용을 선택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非과학적인 역사 해석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비판한 과학적 역사 해석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또한 분국설의 임나일본부설 비판은 단순히 각각의 국가적 입장을 반영하는 편향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해석으로 非보편적 해석을 배격하는 합리적 비판이라는 외피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합법칙성의 적용은 당시 북한 학계에서 고조선 문화계통의 전파론ㆍ외인론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비판했던 사례를 통해 볼 때 편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이 훗날 분국설이 그 연구사적 의의만을 남긴 채 학문적 생명력을 상실해 간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된다. 남한에서 분국설은 비슷한 시기 제시되었던 江上波夫의 기마민족설과 함께 주목받았고 그것이 기마민족설보다 합리적인 학설임이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제3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분국설의 내용이 반영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또한 분국설의 관점은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현재 이른바 사이비 역사가들에 의한 역사학계 비판이 김석형의 분국설을 답습한 상태에서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이라는 외피를 쓰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국설의 현재적 의미를 검토하는 데 연구자의 고민을 야기하는 현상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