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에서 간행한 『조선사개요』를 검토했다. 특히 『개요』에서 早期 봉건사회설을 채택한 데 주목해 그 배경과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 1950년대 중ㆍ후반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기를 전형적인 노예제사회로 본 백남운의 한국 고대사 연구와 체계가 도전받고 있었다. 『개요』의 조기 봉건사회설은 그 일면을 보여준다. 『개요』의 필진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강좌 교수진으로,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사학과 출신이 다수였는데, 이들은 1930년대∼해방 전후 조선의 주류 마르크스주의자와 연줄이 이어져 있었다. 『개요』의 조기 봉건사회설은 그로부터 배태된 것으로, 조선사강좌의 학문적 배경과 특징을 반영했다.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학계는 민족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그룹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그룹으로 양분해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학계의 주축은 후자였다. 후자는 다시 세계사적 보편성을 추구한 그룹과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한 그룹으로 구분되는데, 조기 봉건사회설은 후자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사료비판과 이를 통한 실증을 중시했다. 그리고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했다. 반봉건의 현실 속에서 소련의 소비에트 제도 수용이란 비약을 추구한 것이다. 그 역사적 사례의 하나가 삼국시기였다. 삼국시기 漢의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원시사회에서 도약해서 조기 봉건사회를 형성하였다는 이해였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단기간의 비약 내지 도약을 전망한 것이다. 해방 이후∼1950년대 중ㆍ후반 김일성종합대학의 전반적인 분위기이자 조선사강좌가 공유한 학문적 지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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