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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조선: 한조관계의 역사·이론·방향 - 남북관계의 종식을 위하여

Hanguk vs. Joseon: History, Discourses, and Idea of the Two Korean Sovereign States’ Relations - Beyond the Paradigm of the Inter-Korean Relations and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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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명림
소속 및 직함 연세대학교
발행기관 국학연구원
학술지 동방학지
권호사항 (19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5-65
발행 시기 2020년
키워드 #한국   #조선   #남북관계   #한조관계   #역사적 국가   #반(半)주권국가   #분단   #민족주의   #헌법   #독립공존   #주권   #통일   #평화   #박명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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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지난 75년간 사용되어온 기존의 남북관계(南北關係) 사유체계를 한조관계(韓朝關係)로 근본적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그것은 언어습관, 인식, 정부정책, 미래목표를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현실인식과 접근의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하는 사고의 혁명을 이루자고 제안한다. 민족통일과 통일독립 대신 독립주권과 평화공존의 추구를 말한다. 즉 통일 대신 평화를 말한다. 우선 남북관계는 실제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 언어용법에 해당한다. 한국의 용어인 남북관계의 ‘북한’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치체다. 반면 북남관계의 ‘남조선’ 역시 실재하지 않는 정치체다. ‘북한’, ‘북조선’은 각각 상대를 자기들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배타적 인식이자 용법일 뿐이다. 만약 민족주의와 통일주의의 관점에서 잠정적인 ‘민족’분단을 함의하기 위해 남북관계/북남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할지라도, 정확하게는 남한·북조선관계, 또는 북조선·남한관계라고 해야 하나, 민족주의자들에게 그러한 현실주의는 불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과 ‘조선’ 언어와 세계관 분리의 장구한 역사적 기원과 관련된다. 식민시대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조선’ 용어의 사용 주체들, 특히 급진혁명가와 공산주의자들에게 ‘한국’(이하 ‘대한’ 포함)은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었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대 조선의 인식, 이념, 용어, 국가의 성격과 주체를 둘러싼 경쟁과 적대는 적어도 100년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1920년대 ‘조선’주의자들이 ‘한국’ 사용 진영과 대립하며 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조선으로 돌아간 뒤로, 한민족, 한국, 한국인, 한국어, 한국독립, 한반도 대신 그들은 철저하게 조선민족, 조선, 조선인, 조선어, 조선독립·조선해방, 조선반도를 사용하였다. 일제가 부정한 ‘한국’의 존재와 정체성 대신 일제가 사용한 동일한 언어인 ‘조선’ 정체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따라서 건국 이후에도 그들은 일관되게 조선문제, 조선분단, 조선인민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전쟁이었다. 사실 전통 한국의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국가는 오랜 역사를 가질 뿐만 아니라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존재의 실제 양태 역시 전통 한국은 주권과 독립의식이 매우 높은 ‘역사적 국가’, ‘반주권국가’(半主權國家. semi-sovereign state)로서 이론과 현실 모두에서 사실상의 주권국가로 이해되어야한다. 따라서 근대로의 진입 시기의 민족주의 역시 민족이 국가를 형성한 경로가 아니라, 국가가 민족을 호명한 유형에 해당한다. 근대적 국민적 민족주의의 유형이었던 것이다. 이는 근대 한국의 민족주의를 저항적 식민적 민족주의로 이해하던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근대 이후 ‘한국’담론 계열과 ‘조선’담론 계열에서는 주권 회복을 위해 각기 다른 두 개의 민족, 즉 한민족과 조선민족을 안출하고 호명하는데, 그리고 대결하고 적대하는데 아무런 주저나 거부가 없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 역사에서 하나의 국가에서 갈려나가 모국어로도 각기 다른 민족명칭 및 국가명칭을 쓰는 사례는 — 중국, 베트남, 독일, 예멘과는 달리 — 오직 한국과 조선이 유일하다. 건국 이후 한국과 조선의 헌법과 인식은 초기에는 상대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서로 유일 중앙정부를 자임한 완전 헌법, 통일 헌법이었다. 그러나 각기 통일 조항을 삽입하면서부터는 서로 중앙정부 자임과 통일추구를 병행하는 자기모순에 직면하였다. 나아가 통일 조항의 삽입과 병행하여, 한국과 조선 모두 자신들의 유일 정당성의 기원을 식민시대까지 소급하였다. 민족호명과 국가명칭의 자발적 분화를 넘는 자발적 역사 분립이었다. 더욱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과 조선은 접촉을 하면 할수록 통일의 추구 대신 상대에 대한 공식 인정을 통한 분단수용과 평화공존을 지향해왔다는 점이다. 표면적 언명과는 달리 둘의 호명과 합의의 내용은 점점 더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로의 근본적인 변화였다. 헌법 역시 동일하였다. 즉 사실상의 상대 국가성의 인정, 통일 포기, 공존 추구였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혁명적 변화로서 대화의 산물이자 접촉의 역설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은 헌법적으로 인민공화국·국민국가·민족국가를 넘어 지극히 예외적인 개인국가·가족국가·세습국가를 향해 나아갔다. 게다가 조선의 핵무기 개발은, 핵과 통일을 완전 반명제 관계에 놓이도록 함으로써 남북관계 및 통일추구의 현실적 가능성을 무화(無化)시키고 있다. 핵무기와 (평화)통일은 어떤 경우에도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북정책과 관계없는 한국에 대한 조롱과 무시, 남북관계에 대한 일방적 중단과 재개의 반복 역시 최근 조선의 일관된 행태였다. 특히 조선은 남북관계 개선과 핵무기 프로젝트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실제 정책으로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핵이 존재하는 한 남북관계 사정(射程)과 통일담론은 공동 발전의 여지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특히 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통일 대신 평화를 희구하고 주장하는 세대와 담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공존담론이 분단(극복)담론을, 평화담론이 통일담론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100년 ‘한국’과 ‘조선’ 담론의 기원·역사·전개, 그리고 남북관계의 궤적과 현실에 비추어 궁극적으로 한국과 조선은 모두가 독립성과 국가성을 상호 인정한 토대 위에서 남북관계의 예외성과 특수성을 넘어 한조관계의 보편성과 일반성으로 나아왔다/나아가야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추상이 아닌 구체, 민족주의가 아닌 보편주의인 것이다. 그럴 때 남북의 분단고착을 넘는 한조의 독립공존을 통해 두 정치체의 객관적 실존을 인정하고,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통일이 아닌 평화로 대체하는 일대 패러다임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통일보다 평화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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