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무력 침략했을 때 이에 대하여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은 유엔을 집단적 자위 개념에 더하여 집단안보체제로서 활용함으로써 유엔이 설립된 지 얼마 안되어 집단안보기구로서의 유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유엔 헌장의 집단안보체제는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겪었던 전쟁의 참화에서 얻은 교훈을 기초로 하여 마련된 것으로 주말의 기습적인 북한의 남침 속에서도 미국 등 유엔의 지도적인 국가들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다. 비록 미국이 군사력 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었지만 집단안보기구인 유엔을 통하여 행동을 취함으로써 정당성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다. 미국이 한국 전쟁을 다루는 데 있어서 유엔을 통해 접근한 것은 유엔 그 자체의 집단안보체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유엔을 통한 한국 전쟁 개입은 사람들에게 유엔이 단지 그 회원국들의 합(the sum of its members)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한국 전쟁의 수행이 유엔을 통해 다루어짐으로써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관련 당사국들이 극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전에 머물도록 자제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전쟁이 확대되어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관점이 있었는데 영국과 인도 그리고 아시아-아랍 국가들은 전황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교착상태에 있을 때 미국의 강경노선을 견제하여 휴전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였던 것이다. 결국 1950년 한국전쟁에서 유엔은 초기에 집단안보 개념에 따른 국제경찰군 그리고 후기의 휴전협상 과정에서는 분쟁의 조정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