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은 명실상부하게 원자력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글에서 살펴보기로 한 것은 한국의 원자력 선택과 자립화이다. 1950-70년 한국 원자력 선택의 배경에는 한국이 처한 상황과 미국의 정책 변화가 중요했다. 남북한 모두체제 경쟁 및 전력에너지 부족 문제에 봉착하였고 이것이 원자력의 선택과 자립에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 모든 국가들은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체제 경쟁만으로는 1950-70년대의원자력 도입을 설명할 수 없다. 원자력 기술의 선진국인 미국이 기술을 이전해 주지않으면 안 되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의 원자력 문제는 미국의 태도가핵심이었다. 한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였다. 첫째;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정책변화이다. 미국은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한핵을 허용한다는 정책을 가졌다. 한국은 이를 통해 원자력으로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 둘째;존슨행정부의 정책 변화이다. 동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 현상 속에서 존슨은 베트남전에 개입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함으로써 차관;과학기술 등을 공여 받았다. 특히 미국의 원전회사인 웨스팅하우스와 한국 원전제1호인 고리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계약하였다. 셋째;닉슨행정부의 정책 변화였다.‘주한미군철수와 아시아는 아시아의 힘으로’라고 일컬어지는 괌 독트린의 정책 변화로 한국은 미국의 통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박정희정부는 유신;중화학공업;핵개발계회 등을 모색하였다. 미국도 한국의 핵개발계획의 확장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표면적으로 한국정부와의 에너지관계의 형식과내용을 개선시켜 미국의 상업적 발전원자로를 판매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박정희정부는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용하여 non turn-key 방식을 추구하며 원자력 기술이전에 참여하였다. 한국표준형 원자로(KSNP)는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가원자로설계 핵심기술을 한국에 건네줌으로써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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