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북한의 전후 복구 시기(1953-1961) ‘일반조각’을 중심으로 6·25전쟁에 대한 인식과 전후(戰後) 재건의 모습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문예지·도록·단행본 등에 산재해 있는 조각 관련 문헌과 작품 이미지를 수집하여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고찰했다. 먼저 전후 복구 시기 조각 관련 문헌을 ‘소련 및 동유럽 조각의 영향’;‘창작체험기’;‘창작방법론’;그리고 ‘전시와 작품 비평’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소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지만;1950년대 후반이 되면 소련 관련 문헌이 줄어드는 대신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문헌이 증가했다. 이렇게 외교 채널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미술잡지에는 조각가들의 진솔한 체험기를 비롯해;전시 및 작품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비평문이 실렸다. 특히 기념비 조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195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적인 양식을 찾기 위해 신라·고려 시대 조각을 소환하기도 하고;소련 조각을 이상적으로 내세우는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전후 복구 시기 제작된 ‘일반조각’에는 의외로 6·25전쟁을 다룬 작품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항일혁명 투쟁이나 반미의식을 주제로 한 작품이 더 많은데;이는 6·25전쟁이 미국의 한반도 지배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이 시기 조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천리마 기수들의 노력투쟁이다. 1950년대 중반 속도전을 표방한 천리마 운동이 1950년대 후반이 되면 ‘사상(의식) 개조’를 중점에 두고 ‘증산경쟁’을 결합한 ‘집단적 혁신운동’인 천리마 작업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조각가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천리마 창작단’을 결성하고 자신들을 당 정책의 선전자로 근로자들의 교양 강사로 자처하며 노동자와 농민상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아직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북한의 전후 복구 시기 ‘일반조각’을 중심으로;개별 조각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상과 작품을 살펴본 이 글은 그동안 북한 조각에 대한 연구가 집체창작으로 이루어지는 기념비 조각에 집중되었던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 조각계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