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극장은 대중들에게 종전에는 볼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의 공간이자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변화의공간이었다. 동시에 식민지 시대에는 문화의 공간이면서 저항의 공간;반대로 통제의 공간이었다. 미·소군정에 의한 신탁통치의 시기에는 새로운제도와 체제가 실현되고 또는 기대가 좌절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극장은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발전되고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기능하고 역할 하였다. 당시 극장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이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포괄적 개념으로 대중들에게 명명되었다. 극을 공연하는 공간;음악을 공연하는 공간;무용;연희;놀음이 공연되는 공간임과 동시에 영화관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기능과 역할의 범위가 축소·확대되기는 하였지만앞에서 언급한 공간적 기능과 역할 이외에도 강연장;집회장으로서 활용되었다. 식민지 시기와 같은 특정한 시기에는 조선인들의 회합과 저항의장소이자 결속과 의지를 확인하는 심리적 공간이자 도모의 공간이기도하였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철저한 상업적 공간이자대중의 욕구가 분출되고 수용되는 공간으로 강조되었다. 북한에서는 공공적·도덕적·교육적 공간으로 강조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국립극장 설립의 배경과 과정은 당시 남북한의 문화정책의 차이와 남북한 지도부들이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짐작케한다. 남한에서는 해방직후 미군정하에서 국립극장 설립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극장의 국유화가 무산된 것과 연결선 상에 있다. 남한 정권 수립이후에도 국립극장 설립이 완성되기까지는 2년이 더 지체되었다. 북한에서는해방직후 조기에 극장의 국유화가 완성되었다. 국립극장 역시 북한은 남한보다 3년이나 일찍 설립되었다. 국립극장은 극장 본연의 기능과 역할 뿐만아니라 ‘국립’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따라서 북한의 국립극장 조기설립은 북한의 문화 정책적 의지가 남한과 본질적으로 달랐다고 평가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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