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면 포로가 생기고;포로가 생기면 수용소가 필요하다. 수용소가 있으면;거기에는 항상 일상이 있었고;음악이 있었다. 거제 포로수용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운영되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이전의 포로수용소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노래로 시끄러운 수용소’였다. 시위와 폭동과 슬로건 외침으로도 시끄러웠지만;포로들은 기회만 있으면 노래했다. 포로들에게 노래는 항상 언제;어디서라도 쉽게 동원될 수 있어서 포로들의 요구와 애환과 불만과 저항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냉전의 첫 대리전으로 치러진 한국전쟁과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지만;포로들의 스포츠;연극;영화;종교;음악 등 문화활동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연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논문은 포로들의 문화활동 중에서도 음악에 집중하고자 하는데;음악 중에서도 노래의 다양한 이용가치에 주목하였다. 포로들의 이데올로기 전쟁 속에서 노래는 그 이전의 다른 포로수용소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사용되었고;강력한 투쟁수단이 되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포로들의 노래가 냉전의 첫 결과로 탄생한 거제 포로수용소의 특징으로 볼 수는 없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노래실력이나 레퍼토리에서 우세했던 친공 포로들에게 노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방패였고;수용소당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무기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총정치국이 1951년 11월 <전투원들에게 주는 노래집>제2권을 발간하여 거제 포로수용소의 친공포로들의 노래투쟁을 지원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의문도 제기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이 추구하는 성과는 한국전쟁에서 냉전과 음악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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