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이전될 뻔한 국립박물관 소장품을 극적으로 부산으로 대피시킨 일은 문화재의 수호와 보존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일화로 자주 언급된다. 이 연구에서는 록펠러 아카이브 센터에 소장된 기초사료를 토대로 국립박물관 소장품 해외소개를 둘러싸고 표출된 한국과 미국 측 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록펠러재단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조명해보고자 한다. 한국전쟁 중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해외소개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다양한 시각과 이해관계가 얽히며 해외소개의 성격이 대피에서 전시로 바뀌는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첫 단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제안으로 박물관 소장품 미국 이송 작전이 시작되었고;미국의 학자와 박물관 관계자가 호응하여 추진되다가 재원의 부족과 정치적 이유로 일본으로 이송하는 결론이 나면서 중단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호놀룰루 미술관의 적극적인 소장품 보관 및 전시계획이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결합하여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역시 재원 확보에 실패하고 미 대사관의 반대 그리고 한국 국회의 거부로 흐지부지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1955년 4월에 ‘문화재해외전시에 관한 동의안’이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서 대피가 아닌 전시로 성격이 바뀌어 추진되었으나;《한국국보전》 추진과정의 주도권이 미국 정부와 박물관 관계자에게 넘어가는 한계가 나타났다. 각 단계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치;외교;미술 분야 관계자들의 다양한 사적;공적 이해관계가 뒤얽히고 충돌하고 그로 인해 계획이 중단되고 제지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소장품 해외 대피가 정치적 고려 때문에 번번이 제지되는 것은;긴박한 전쟁의 위기 속에서 시작된 박물관 소장품 해외 대피가 냉전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1947년부터 한국의 박물관에 관심을 보였던 록펠러재단의 존재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중재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영향력 있는 문화기관이나 개인에 긴요한 최소한의 지원을 통해 미국 정부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데 은밀하게 기여하고자 했던 록펠러재단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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