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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과 냉전의 한국문학과 이산 -재러 한인 문학을 중심으로-

Korean Literature and Diasp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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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재용
소속 및 직함 원광대학교
발행기관 현대문학이론학회
학술지 현대문학이론연구
권호사항 (8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7-73
발행 시기 2020년
키워드 #이산문학   #조명희   #최호림   #조기천   #전동혁   #코민테른   #재러한인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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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코리언 디아스포라 문학 중에서 재소 한인문학은 가장 먼저 형성된 문학장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자체적으로 조선인 문단이 형성되었는데 발표 무대는 ‘선봉’ 신문사였다. 최호림을 중심으로 한 이 조선인 문단은 조명희가 1928년에 연해주로 들어오면서 한층 확대되었다. 하지만 조명희와 최호림은 연해주 조선인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조명희는 연해주 조선인을 고국 조선과의 연계 속에서 찾으려 한 반면;최호림은 연해주 조선인을 소비에트 러시아의 하나으 소수종족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1935년 이전까지는 코민테른의 좌선회 정책으로 말미암아 최호림이 우위를 점하였다. 하지만 1935년이후 코민테른의 7차 대회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옹호하는 정책이 선포되면서 조명희가우위를 점하였다. 최초의 연해주 조선인 문예지였던 ‘근로자의 고향’을 폐기하고 ‘근로자의조국’이란 새 이름의 문예지를 조명희는 발간하였다. 하지만 1938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가 시행되면서 조명희는 체포되어 옥중에서 사망하였고;최호림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다. 연해주 조선인 문단은 전멸하였다. 1945년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삼팔선 이북에 진주하였을 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동반하였다. 이 중에는 연해주 시절부터 문학을 하였던 이들이 동참하였는데 조기천과 전동혁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소련군대의 기관지인 ‘조선신문’을근거로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그 지향이 달랐다. 조기천은 고국과의 연계를 통한 고려인의정체성을 주장하였기에 열심히 조선어를 비롯하여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을 하였다. 소련과는 다른 조선의 독자성을 강하게 의식한 것이다. 이에 반해전동혁은 고려인을 소련의 한 소수종족으로 간주하였기에 문명 소련의 문학과 문화를 후진 조선에 소개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창작도 그 연장선에서 행했다. 조기천과전동혁은 이러한 대립은 당시 소련군과 함께 들어온 고려인 문학인들의 두 가지 경향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비단 북한에서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조선어보다 러시아가 주된 문학언어로 되는 1970년대 이후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 고려인 문학은 언어의 문제로 핵심적인 사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아나톨리 김을 비롯한현재 러시아로 창작활동을 하는 세대들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세계관과 스타일로 문학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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