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북한 군사점령은 미군의 남한 점령과 비교하여 외부에 나타난 모습이 좀 다르다. 북한에서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하였고 붉은 군대의 희생을 통해 승리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북한을 군사점령한 대외명분은 일본 식민지에서 한국인들을 해방시키고 민족자결에 따라 독립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소련군정의 복잡한 구조와 활동의 비밀성 때문에 과거에는 소련군정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으나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공개된 문서, 관련자의 증언과 저서 등을 통해 이제는 그 실상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소련이 내세운 민족자결은 레닌계열의 것으로 윌슨 민족자결과는 그 철학적인 배경과 실현에서 방법이 다른 유형이다. 레닌의 민족자결은 사회주의 확산을 위한 즉각적인 독립된 주권국가의 수립이고 윌슨의 민족자결은 주민자치를 통해 자유 민주적인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으로 국제연맹에서 위임통치, 제2차대전 이후 유엔에서 신탁통제도로 발전한 것이다.1945년12월 모스크바 외상회의 결정으로 하나의 합의문에 서로 다른 민족자결의 내용들이 포함되게 되었다. 카이로선언 이후 모스크바 결정은 한국의 장래를 위한 최초의 구체적인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모스크바에서 합의한 신탁통치가 어떤 방식이든 불문하고 과거 일본의 보호국 통치와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신탁통치 결정에 아주 부정적이었다. 소련군정은 이러한 와중에도 북한 내에 사회주의 정권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진행하는 등 이중적인 대북한정책을 추구하였다. 토지개혁도 이런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으로 동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토지개혁보다 과격한 개혁 조치로 평가되며, 이제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북한은 토지의 사적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향후 통일한국에서 다시 토지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른 법적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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