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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미 관계와 민족복음화 운동의 상관관계

Correlation between US-ROK Relations and the National Evangelization Movement in the 1970s

상세내역
저자 이은선
소속 및 직함 안양대학교
발행기관 영산신학연구소
학술지 영산신학저널
권호사항 4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9-83
발행 시기 2019년
키워드 #1970년대   #한미 관계   #민족복음화   #기독실업인회   #민간외교 활동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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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70년대 한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1971년부터 시작된 미군 철수였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과 데탕트를 추구하는 가운데 군비축소를 위해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면서 북한과 대화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6.23선언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 불안과 경제의 효율성을 내세워 유신체제를 수립하였고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인권을 탄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의회에서 프레이저 의원을 중심으로 한국 인권청문회가 개최되었고, 한국에 대한 군사와 경제 원조를 삭감하고자 하였다. 한국 정부가 유신체제 수립으로 독재정치를 시행할 때, 한국교회는 민족복음화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여의도 광장을 사용하면서 정부의 물질적인 지원을 받았고, 한국의 보수 교회는 정부의 안보위기에 따른 반공의식 강화에 상호 협력하였다. 그와 함께 한국의 종교와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비판 여론이 고조될 때, 기독교인들은 여의도 대형집회를 통해 국제 사회에 한국 정부가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그와 함께 기독교실업인회의 김인득 장로와 김인준 장로와 김장환 목사는 1975년부터 76년 사이에 3차례의 방미 민간외교 활동을 통해 반한 감정을 완화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1976년에 프레이저 의원이 제안한 한국 군사원조를 삭감하는 413호가 통과되었다. 그러나 포드 대통령의 거부로 의회로 반송되었을 때, 한국원조를 지지하는 더윈스키 안이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과 함께 김인득과 김장환 목사의 후원활동을 받은 미국의 극동방송 사장 보우만이 협력하였다. 이와 같이 당시 보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기독교인들과 실업인들의 인맥을 통해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여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