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담론이 일정 부분 변환되어가는 양상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술하는 일은 북한 담론의 형성과 변환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을 드러내고 북한 재현의 역사성을 사유하는 한 방식이 될 것이다. 한 시대의 인식을 가능하게 했던 특수한 담론들과 무의식적인 장에 관한 논의는 ‘북한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존재했는가’, 다시 말해 서로가 금기이자 흔적으로 존재했던 분단 체제하에서 ‘한국인들이 보고 들었던 북한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북한 담론은 북한사회에서 발생한 실제적인 변화들에 대해 말해주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상상해왔는가를 보여준다. 분단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던 것들을 모두 ‘금기’로 만들어버렸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전 분야에 걸쳐 교류와 소통이 차단되었고, 북한에 관한 모든 것이 사실상 ‘만질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지난 반세기에 걸쳐 북한은 배후, 악마, 바이러스, 빈곤, 정신병 등의 용어들을 통해 표현되었고, 점차 어떤 ‘비정상성’을 체현하는 거대 주체로 변화해갔으며 종국적으로는 ‘낡은 것’의 표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들은 한국인들이 북한을 이해하고 타자(북한, 재일조선인, 중국조선족, 탈북자)를 상상하는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은 북한을 하나의 담론적 구성물이자 남한사회의 자기 반영물로 조명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우리가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구축된 재현 체계와 상호 작용한다. 대상에 대한 이해는 이 재현 체계에 의해 제한될 수도 있고 확장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북한의 이미지와 표상들, 그리고 북한을 이야기하는 방식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성되고 변화해온 재현 체계에 대한 이해를 통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북한 재현은 단지 ‘북한 그 자체’를 드러낸다는 목적에 복무하지 않았다. 북한을 재현하는 일은 ‘자기(남한)’를 재현하려는 욕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북한에 관한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남한에 대한 이야기, 즉 ‘자기 서사’로 귀착되었다. 한편, 분단체제하에서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예외적인 존재인 ‘귀순자’와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재현되는 방식은 중요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들과 그들의 곁에서 발생했던 말과 행위들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독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오랜 세월 동안 두 체제가 봉착해 있던 정치와 재현의 아포리아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