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단군 인식과 단군민족주의는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보여왔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시조로서 단군의 역사성을 긍정적으로 파악한 견해와 부정적으로 인식한 견해가 한동안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에는 리상호에 의해 단군신화의 역사성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있었다. 그러나 단군의 역사성과 고조선의 건국시조로서 단군의 위치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은 주체사상이 부각되며 민족주의가 강하게 표방된다. 나아가 ‘조선민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단군에 대한 연구가 강인숙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다. 『조선전사』(1979, 1991)를 보면 단군은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확실히 자리잡는다. 그러나 아직 단군이 민족 전체의 시조로 부각되지는 못했다.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면서 민족에 대한 상징적 구심점이 필요하게 되었고 평양지역을 강조할 필요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1993년 단군릉 발굴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부각시키고 전조선(단군조선) 시기에 조선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민족의 시조로 인식되어온 단군의 존재는 남북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북한의 단군 인식과 단군민족주의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견해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공동연구와 관련 유적의 공동 조사 및 발굴 같은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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