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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북한의 점령정책과 조선인민의용군의 동원-미군 포로심문보고서를 중심으로

The Occupation Policy of North Korean and the Mobilization of Korean People’s Volunteer Army during the Korean War : Focusing on the US Army’s POW Interrogation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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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성준
소속 및 직함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발행기관 한국근현대사학회
학술지 한국근현대사연구
권호사항 (8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73-203
발행 시기 2019년
키워드 #한국전쟁   #조선인민의용군   #인민의용군   #북한의 점령정책   #전쟁포로심문보고서   #윤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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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전쟁기 조선인민의용군(이하 인민의용군)으로, 일반적으로 북한이 남한을점령했을 때, 점령지역에서 강제 또는 자원의 형식으로 정규군에 편입된 병력을말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민의용군은 시기적으로는 1950년 6월 25일전쟁 발발 이후, 지역적으로는 38선 이남 북한이 점령한 남한지역에서 징집된 민간인이다. 그리고 분석을 위해 국내에 수집되어 있는 포로심문보고서를 모두 검토하여확인 가능한 604명을 선별했다. 남한 점령지역에서의 본격적인 인적 동원은 점령 직후 실시되었다. 특히 북한이1950년 7월 17일 군사동원사업을 강화를 위해, 군사위원회 군사동원부를 군사위원회 군사동원국으로 승격하고, 점령지역에도 이를 설치하면서 인민의용군은 남한점령 지역 ‘인민’의 자원 형식보다는 북한 영토 지역 공민의 ‘동원’ 형식으로 징집되었다. 대표적인 동원 방식은 대규모 집회를 통한 징집이었다. 이것은 특히 학교나 공장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인민의용군 중에는 농민, 학생, 노동자가 많았고, 대다수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었다. 한편, 지방이나농촌에서는, 마을 회의나 모임을 통해 입대 대상이 결정되었다. 동원된 인민의용군의 대다수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거친 후, 보충병으로 전선에 배치되었다. 또 일부는 빨치산이나 첩보요원 등으로 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이렇게 동원된 인민의용군의 규모는 최소 10만여 명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