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60년대 서독으로 이주한 재독 한인여성들의 생애사를 통해 이들의 분단경험이 갖는 특징을 재구성하였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60 년대 서독으로 취업한 한인여성들에게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육 화된 반공 대 용공의 흑백논리가 심화되고 확장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한 인 여성들은 독일 이주사회에서 작동하는 분단장치의 행위자들이다. 둘째, 구조적 차원 에서 한인 여성들의 서독 이주는 냉전체제의 유지를 위한 동독-북한, 서독-남한 동맹의 일환이었으며, ‘동백림 사건’을 통해 한인 이주자들은 남, 북한의 두 체제가 냉전을 수행 하던 방식인 재외 공간 ‘국민화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다. 셋째, 세계적인 차 원에서 냉전이 해체되던 1994년 베를린에서 발생한 ‘안기부 프락치 백흥용 양심선언’ 은 남한사회의 분단장치를 유지해온 ‘간첩사건’이라는 블랙박스가 해체되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일상의 흑백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이념적 다원화의 토대가 되었 다. 넷째, 재독양심수후원회를 통한 한인여성들의 ‘백흥용 양심선언’ 지원활동은 오랜 서 독 시민사회에서의 활동, 광주항쟁을 계기로 한 반공주의에 대한 성찰, 독일 통일과 북한 방문 등을 통한 ‘분단 이후’에 대한 삶의 경험이 배경이었다. 이러한 독일 이주민의 삶을 통해 분단장치가 새롭게 주체화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다섯째, 베를린은 1960년 대 동서 분단지대의 통로를 통해 남북한의 탈/분단 행위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접촉하고,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남북의 행위자들이 평화를 모색하고 분단 정치를 수행하던 탈/ 분단의 역사적인 장소이다. 여전히 한반도의 분단에 포획되어 있지만 분단의 경계를 오 가는 일상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단의 내부이자 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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