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초반부터 남한과 북한은 본격적인 체제경쟁을 시작했다. 영화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남북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삼아 기술적으로 진보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칼라영화와 와이드스크린은 자신들의 체제가 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였다. 이러한 영화기술은 공교롭게도 남한과 북한 모두 <춘향전>의 텍스트를 영화로 만드는데 활용되었다. 냉전체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탓에 남한과 북한의 영화기술 개발은 같은 체제의 국가들의 도움을 통해 급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칼라영화 기술과 특수효과 기술들을 전수받았다. 이는 윤용규 감독이 만든 <춘향전>이 제1회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촬영상을 획득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남한도 마찬가지로 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인 칼라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이중 홍콩과의 합작영화 제작을 통해 칼라영화 기술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자체적인 칼라영화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칼라영화는 안종화가 연출한 <춘향전>이다. 곧이어 북한의 <춘향전>에 뒤지지 않는 영화의 제작이 이루어지는데 1961년 신상옥과 홍성기가 경쟁했던 두 편의 <춘향전>은 칼라와이드스크린 기술이 활용되었다. 이처럼 남과 북의 체제 대결에서 <춘향전>은 칼라영화가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영화기술의 발전을 테스트 하는 공통된 텍스트였다. 어찌 보면 1950년대 말 한반도에서 제작되었던 여러 편의 춘향전은 냉전 하 한반도에서 영화기술의 대결과 경쟁을 보여주는 한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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