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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조선 화교들의 북한 사회 정착 과정

Settlement Process of Overseas Chinese in the North Korea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상세내역
저자 박영실
소속 및 직함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발행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 한국학
권호사항 42(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63-296
발행 시기 2019년
키워드 #북한 화교(overseas Chinese in the North Korea)   #북조선인민위원회(the North Korea People’s Committee)   #북조선화교연합회(the North Korea Overseas Chinese Federation)   #국공내전(Chinese civil war)   #박영실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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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반도 해방 직후 북한에 거주하던 화교의 수는 6만여 명이었고, 국공내전이 진행되던 당시에도 초기에 화교들이 모국으로 생각했던 것은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동북지역과 거리가 인접했던 이유로 화교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은 강화되었다. 특히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북조선화교연합회의 구성은 화교들의 성향을 변화시켰다. 북조선화교연합회는 화교들에게 사상교육, 북한 정부의 정책 선전 등을 진행했고, 북한 정부에게는 화교들이 조선인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화교연합회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과 북조선인민위원회 산하 각 기관에 전문을 보내 북한에서 진행되는 경제적, 사회적 사업에서 화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북한 정부도 이들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판단 하에 정책을 집행했다. 결국 화교들은 북한 정부가 진행하는 경제 분야와 교육 분야 등에서 거의 조선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