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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후 유엔에서 논의된 동북아 현안(1950∼1951)

Northeast Asia Issues Discussed by the United Nations After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1950-1951)

상세내역
저자 정형아
소속 및 직함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발행기관 역사실학회
학술지 역사와 실학
권호사항 (7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39-277
발행 시기 2019년
키워드 #6·25전쟁   #유엔   #영토침공   #중공군 개입   #냉전   #정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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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평화를 염원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재된 갈등이 유럽과 동북아의 전후처리과정에서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세계 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해 조직된 유엔에서도 갈등과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있었다. 본문은 우선 1950년 유엔의 동북아의 여러 의제 중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 가지 사안을 주제로 하였다. 첫 번째, ‘미국이 중국영토 타이완을 침략’했다는 이유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미국을 제소한 것이다. 두 번째, ‘미군기의 중국 동북지역 영토 침범’으로 미국의 공군기가 중국국경을 넘어가 동북지역을 폭격하였다고 역시 미국을 제소한 것이다. 세 번째 의제는 중공군이 6·25전쟁에 출병하자 미국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 중공군을 침략자라고 규정하려 한 것이다. 이들 의제를 고찰할 때 관심을 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영토침범’이다. 또 하나의 관심사항은 논쟁 관련국과 의제 당사국들이다. 당시 이들 의제를 제기하고 열띤 논쟁을 벌인 국가는 중국, 미국, 그리고 소련이었다. 그러나 실제 의제의 주인공인 국가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두 개의 중국이었다. 동북아의 현안은 당사자가 아닌 주요 관련국들에 의한 문제제기와 논쟁이 유엔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중국의 입장을 대리하던 소련은 신중국 대표의 유엔출석을 제의하였고 그것은 유엔의 새로운 갈등 의제가 되었다. 이는 중국의 유엔대표권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련대표는 미국 대표단과 국민당대표가 연합하여 신중국 대표의 출석을 방해한다고 항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중화민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국가 중에서도 영국 등은 유엔의 공정한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위해서라도 신중국 대표가 직접 출석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의 제국주의 행태와는 분명 다르지만, 당시 상황은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지역 통합을 위한 갈등이었으며, 일국에 의한 것이 아닌 공통의 이해와 이념을 가진 집단에 의한 상호 견제였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나라가 대전의 재발을 우려했고, 미소양국도 피차 전면전을 꺼려하였다. 특히 영국은 아직 전후 재건이 완성되지 않은 유럽의 후견적 위치에 있는 미국이 유럽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하지 않기 바랐다. 그러면서도 6·25전쟁으로 시작된 동북아의 현안이 유엔에서 수개월에 걸친 지난한 논쟁을 끌었던 것은 양대 집단의 상호 팽창에 대한 견제 때문이었다. 즉, 6·25전쟁과 그 후 발생한 여러 현안은 지역과 집단의 상호 견제와 이해관계 가운데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던 것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