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북한문학은 대체로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이야기에 기반을 둔다. 하나의 사건은 ‘1946년 토지개혁’이고, 하나의 이야기는 ‘수령의 항일투쟁 이야기’이다. 둘의 공통점은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와 같은 ‘사적 소유’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일견하기에는 이러한 사건과 이야기의 의미가 ‘사적 소유’를 지양하는 유물변증법의 합법칙성을 재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토지개혁을 제재로 하는 이기영의 「개벽」과 같은 작품의 인민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실 사적 소유를 지양하는 유물변증법의 필연적 전망은 끊임없이 사적 소유를 지양해야 하는 전망이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도 끊임없이 사적 소유의 주체성을 지양해야하는 전망을 가진 자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이 가진 전망은 성취된 현실의 형상이라기보다는 성취된 현실이 내면화된 형상이다. 단적으로 말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전형은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 없다. 이 전형은 사적 소유와 끊임없이 대결하는 ‘시지프스적 대자’이며, 사적 소유와 함께 사라질 인간형인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지프스적 대자’가 ‘카프의 이기영’의 『고향』에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밝힐 것이고, ‘북한문학의 이기영’의 「개벽」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기영의 「개벽」의 중심 제재는 토지개혁인데, 이는 ‘사적 소유를 폐지한 것’이다. 그래서 「개벽」의 인민의 전형들은 사적 소유와 대결할 필요가 없는, 사적 소유가 폐지된 현실을 향유하는 주체이다. 그리고 북한문학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전유하면서 ‘최고의 전형’으로 내세운 ‘수령’은 사적 소유를 폐지한 주체이다. 그래서 북한 문학에서 수령 주체는 인민주체의 ‘어버이’가 된다. 사적 소유의 폐지나 제국주의의 철폐라는 역사의 종국을 도래하게 하는 주체와 역사의 종국을 향유하는 주체 간의 ‘가족관계’가 탄생한 것이다. 문제는 ‘사적 소유의 폐지’라는, 성취된 역사의 종국이 미래를 규율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토지개혁이나 민족해방과 같은 ‘수령의 숭고한 작품’은 차후의 ‘수령의 작품’도 ‘절대적 목적’으로 인식되게 한다. 그리고 토지개혁이나 민족해방의 ‘숭고한 목적’을 향유한 인민은 차후에 수령이 제시하는 ‘절대적 목적’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방기 북한문학에 형상화되는 수령과 인민은 ‘절대적 목적’을 매개로 ‘목적론을 담지하는 자’와 ‘목적론의 수단’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 글은 「개벽」과 『고향』의 양식을 비교하면서, ‘역사적 필연을 추동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이 역사의 필연을 성취한 수령의 전형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고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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