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1951. 9. 8.)이 체결되기까지 초안을 둘러싸고 소련이 미국과 벌인 줄다리기를 원문에 충실하며, 그러한 입장변화 원인을 소련측 입장에서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소련은 전쟁 직후 연합군사령부가 내린 일련의 명령과 평화조약 초기 초안에 따라 쿠릴열도와 독도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얄타회담에서 연합국이 동의한 바였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화와 6·25전쟁으로 인해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였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우려하면서 일본 재무장으로 돌아섰고, 더욱이 응당 반환되어야 할 영토는 불확실해져 갔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미국이 대공산진영 외교전략을 가동한 상태에서 중국 모택동과 북한 김일성을 지나치게 후견함으로써 영토문제에 내재된 자국 이해를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소련은 미국이 일본 재무장과 현안도서 반환 저지 입장을 취하자 자국의 대한해협에서의 자유항행 요구로 대응하였다. 이는 소련의 지정, 지전략적 의도를 노출시켜 향후 미국의 미일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추가대응을 초래하였다. 이처럼 1951년 9월 체결된 평화조약을 둘러싼 미소의 외교협상은 한때 연합국이었던 열강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흥정하는 일이었다. 독도나 쿠릴열도 그리고 대한해협은 예외없이 흥정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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