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해방 직후 북한 과학기술 교육기관의 교원 충원과정에서 나타난 식민지적 연속성과 북한의 기술인력 활용실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해방 직후 중공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은 북한은 각 공장을 운영할 기술자가 부족함을 자각하고, 단기적 대안으로 남한의 과학기술자 월북 사업과 잔류 일본인 기술자의 유용(留用)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잔류한 일본인 기술자들은 공장 복구뿐만 아니라 일부는 교육 사업에 투입되어 각종 기술원양성소와 기술전문학교, 공업대학 등에서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이들은 북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기술교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북한의 정치사상적 안정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기술자로서 기술교육만을 담당하는 일본인 기술자들과는 달리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에 임용된 조선인 교원들은 정치사상적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공업대학 교원들의 경우 일제시기 독립운동이나 정치 운동을 경험할 기회가 적었고, 과거 이력과 출신 성분 또한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취약한 그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직후 부족한 과학기술 인력과 북한의 산업정책으로 인해 공업대학 교원들은 ‘오랜 인테리’로서 정치적으로 유연한 평가를 받고 임용되었다. 이후 1948, 1949년에 이르러 대학교육을 받은 민족간부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북한 간부들의 계급구조가 노동자·농민 계급으로 재편되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업대학 교원들은 이 계급 재편에서도 큰 변화 없이 계속 교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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