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영은 해방 이전 북한의 대표적인 감리교 목사로서 항일운동에 앞장섰으며, 해방 이후에는 조만식과 같이 공산주의에 맞서 평남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민주당의 부당수를 지냈다. 반탁운동 때문에 소련군의 박해를 피해 월남하였으며, 남한에서는 월남민과 북한 기독교를 대표해서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노력했다. 이윤영은 조선민주당을 서울로 이전하고, 그 대표자로 활동하였다. 조선민주당은 이승만과 같이 철저한 반공과 반탁을 외쳤지만 이승만과 달리 미소공동위원회의 임시정부에 관한 논의에는 참여하였고, 남한만의 좌우합작이 아니라 북한에서도 좌우합작을 인정해서 북한 우익의 대표적인 인사인 조만식을 정치에 복귀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윤영은 남한에서 이승만과 손을 잡고 우익 세력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이윤영은 이승만의 친위단체인 민족통일총본부에 가담하여 중심인물이 되었다. 특히 1947년 1월 김구가 이승만의 우익세력을 자신의 세력아래 두려고 했을 때 이윤영은 이것을 막았고, 1947년 5월에 재개된 제2차 미소공위에서 우익단체들의 연합체인 임시정부수립대책위원회의 대표로서 미소공위에서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런 공로로 이윤영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부위원장이 되었다. 이윤영은 북한의 조만식과 남한의 이승만의 측근이자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귀한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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