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화를 직접 겪지 않았다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금까지 태평양전쟁,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전후’의 관점 아래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포화 없이 찾아왔던 ‘종전’은 해방 이후 한반도의 체제를 재정립하는 사건 그 자체였으며, 정치·사회·경제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문학 장에 가릴 수 없는 표상들을 남긴 것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후’를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은 해방 이후 ‘나라 만들기’의 일환 속에서 이뤄진 것들이라 보다 섬세한 접근을 요구한다. 문학단체가 말 그대로 난립하던 이합집산의 혼란 속에서 산발적으로나마 제 모습을 드러냈던 ‘전후’의 표징을 추스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논문은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살아갔던 기억이 해방 이후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담론들을 어떤 방식으로 압도하고 있었던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해방과 함께 한반도에 엄습한 전후처리라는 문제는 미군정, 대한민국 임시정부, 더 나아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있어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후’의 논리를 구축해나갔고 그 흔적은 물론 문학 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문학 장의 동향을 살펴봤을 때 한반도 내에서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전후’의 체제를 스스로의 문제로 삼았던 ‘임정’을 기준으로 ‘해외’와 ‘해내’를 구분하는 시선이 발견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전쟁’과 ‘해외’의 표상을 ‘해내’로 끌고 들어온 임정의 논리는 북한을 비롯해 조선문학가동맹 등 좌익계열을 주축으로 거세게 비판을 받게 된다. 이 논문은 ‘해내’의 입장에서 ‘해외’의 논리가 한반도 내에서 소거되어갈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풍경을 주목함으로써, 태평양전쟁 후의 다양한 ‘나라 만들기’가 어떤 방식으로 상상되고 전개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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