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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 拉致 事件에 관한 연구‒가족회 결성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kidnapping of Japanese by North Korea

상세내역
저자 이수익
소속 및 직함 한국국제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일본근대학회
학술지 일본근대학연구
권호사항 (6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19-236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拉致   #家族会   #失踪   #北韓   #日本人   #이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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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본인 납치 사건은 1963년의 데라코시 다케시 행방불명 사건부터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북한의 소행임이 알려지면서, 1997年 4月 15日에는 「北韓 拉致 疑惑 日本人 救援 議員 聯盟」이 自民党 나카야마 마사키(中山正暉) 議員을 会長으로 하여 衆議員 78名, 参議員 45名이 入会議員으로 結成된다. 또한 北韓에 의한 拉致疑惑이 있는 가족들도 일치단결하고, 각지에서 지원단체도 생기기 시작하면서 정치가들 사이에서도 운동의 기틀이 만들어진다. 国会에서도 5月 1日 参議員 決算議員会에서 自民党의 요시카와 요시오(吉川芳男) 議員의 질문을 받은 정부는 「北韓에 의한 拉致 事件이라고 認識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公式 発表한다. 또한 지금까지 北韓에 拉致된 혐의가 있는 日本人을 「6건 9명」에서 요코타 메구미를 包含해 「7건 10명」이라고 수정 발표한다. 그러나 「議員 聯盟」이 組織되었지만, 議員들 사이에 서로 意見 충돌이 일어나면서 휴면 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北韓 工作員들에 의한 실종 사건이 일어난 지 20年 이상 지난 시점에서 결국 北韓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日本人들은 그 事実에 놀라면서 어떻게든 拉致者들을 구하려고 움직임이 나타난다. 拉致 被害者의 家族들이 아침 街頭에 서거나 署名 活動을 하면서 救出을 呼訴해 1997年 6月에는 救出을 要求하는 서명에 同参한 者가 35만 명이 되었고, 8月 27日 「拉致 糾明 救出 発起人会」가 모은 서명 50만 5천 건과 福井県 小浜市로부터 拉致된 지무라 야스시와 하마모토 후키에의 救出 要求 서명 7만 건을 합쳐서 当時 日本 首相 하시모토 류타로에게 제출한다. 그리고 10月에는 現在 被害者 家族과 함께 제일 열성적으로 구출 활동을 하여, 실질적인 리드 역할을 하고 있던 『北韓에 拉致된 日本人을 「救う会」』라는 단체가 関東 地方을 중심으로 결성된다. 会長에는 北韓 情勢를 잘 알고, 요코타 메구미가 北韓에 拉致된 事實을 잡지에 처음으로 게재한 『겐다이코리아』의 편집장인 사토 가쓰미가 임명되어 署名 活動, 募金 活動, 政府나 国会 등 関係 機関의 陳述・要請, 내외 매스컴・여론에 대한 어필, 정보수집・분석, 계몽 활동, 家族会・議員 聯盟・他地域에서 같은 目的으로 조직된 기구와의 제휴 등의 活動을 담당하게 된다. 「救う会」는 北韓에 대해서 「그냥 무서운 나라」라는 정도의 인식 밖에 없는 家族들을 대신해서 지금까지 北韓에 의한 拉致 事件의 해결을 위해서 日本 정부에 대해 대책 마련 등 실무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1997年을 기점으로 北韓에 납치된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결성한 「家族連絡会」, 정치가들의 모임인 「救う会」 등의 단체가 발족되어 다양한 방향에서 拉致 問題 解決을 위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모두 日本 政府에 대해서도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家族連絡会」발언이 실제 피해 당사자로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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