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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 공비토벌 연구 - 1948 ~ 6·25전쟁 직전까지 -

A Study on the Eradication of North Korean Guerrillas in Gangwon Province - From 1948 to 1950, right before the Korean W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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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호민
소속 및 직함 가톨릭관동대학교
발행기관 육군군사연구소
학술지 군사연구
권호사항 (14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45-71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무장공비   #오대산   #태백산   #게릴라전   #인민군유격대   #남로당   #한국전쟁   #임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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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연구 목적은 첫째, 1948년부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직전까지 강원도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공비들의 실태, 둘째, 공비들이 활동을 전개하려 한 궁극적인 목적, 셋째, 공비들에 대한 군경의 토벌 과정과 성과들을 설명하는데 있다. 추가로 38선을 접하고 있던 강원도 지역의 실상이 한국전쟁 발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소련과 북한은 한반도 전체를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반대로 미군정과 남한은 민주주의 중심의 사회 및 국가체제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고자 남로당 세력과 연대하여 38선 이남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게릴라전과 같은 불법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강원지역에서의 남로당 활동은 1946년부터 발생되었다. 북한의 인민유격대는 남?북 노동당이 공식적으로 합당을 결정한 후인 1949년 7월 조직되었다. 인민유격대가 조직된 것은 이전까지 남한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유격투쟁’을 조직적이며 좀 더 대규모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비들의 활동이 더 활발했던 시기는 단독정부가 수립된 1948년 8~9월 이후부터이다. 1948년 11월 강원지역에는 태백준령을 타고 넘어온 인민군유격대가 기존 남로당 조직과 연대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이에 대해 군경은 협력하여 무장공비들을 소탕·섬멸시켰다. 군경에 의한 강원도 지역 공비토벌의 성과가 내포하고 있는 전쟁사적 측면에서 의미는 첫째, 강원도 오대산뿐만 아니라 태백산, 경상북도 내륙 산간, 지리산 지역으로 연결되는 공비들의 이동 및 병력과 무기 공급을 차단시키데 기여하였다는 점, 둘째,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한 이후 북한군과 남한 내의 무장공비와의 연대 약화 현상이 발생되었다는 점 등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