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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6·25전쟁기까지의 임시 초중등교원 양성 연구

A study on the temporary teachers’ training from the Korean liberation to the Korean War

상세내역
저자 국성하
소속 및 직함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발행기관 한국교육사학회
학술지 한국교육사학
권호사항 40(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36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교원   #교원양성   #임시 교원양성   #사범학교   #교원양성소   #국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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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해방 이후 6·25전쟁 때까지의 임시 초등, 중등 교원 양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일본이 교사가 물러나면서, 문교부는 교원의 빠른 충원을 통한 학교의 정상화를 이루고자 했다. 의무교육 실시는 정규적인 교원양성과 더불어 임시 교원양성에 의존하게 했다. 임시 교원양성은 사범학교 등의 정규교육기관에서 속성과, 강습과 등의 형태로 있었다. 국민학교 교원양성의 경우 중등학교 또는 지역별 교원양성소에서도 있었고, 중등교원양성은 대학 등에 위탁한 경우도 있었다. 교원양성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었다.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학교현장의 공산주의자의 검거가 그 하나의 문제였다. 1946년 9월은 대대적인 좌익 검거가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져, 그 해 가을학기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정도였다. 교원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교사의 잦은 결근, 이직 등의 문제로 표출되었다. 단기 양성과정에 의지하는 교원양성은 무자격 교원 문제와 함께 학교 수업현장의 질적 저하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교원부족 현상이 다시 나타났고, 임시 교원양성이 계속되었다. 교원양성 기관에 소속되어 있으면, 징집에서 보류되기도 했고, 현직 학교 교사일 경우도 징집이 보류되기도 했다. 이는 초중등학교의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1950년대 말이 되면 임시 교원양성은 폐지되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