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임시정부 법통성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우파의 논리로 작동했다. 해방 정국에서도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은 우파의 전유물이었다. 그리고 우파에 의해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제헌 헌법 전문에 명문화되었다. 이후 군사 정부에 의해 삭제당했던 임시정부 법통성은 1987년 개헌에서 다시 헌법 전문에 들어갔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임시정부 법통성에서 찾고자 했던 여야가 합의한 결과였다. 이러한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이 갖는 정치성은 학문적 공론장에도 힘을 발휘했다. ‘3・1정신을 계승한 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한 연구는 일제 시기 독립운동사를 임시정부사 중심으로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3・1운동조차 임시정부 역사의 종속 변수가 되어갔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민족해방운동사의 관점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역사를 각각의 독립변수로 다루고 임시정부를 일개 독립운동단체로 보며 임정법통성을 부정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임시정부 법통성을 주장하는 독립운동 연구에서는 우파적 색채가 옅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 임정법통성을 부정하던 민족해방운동사 연구자들은 3・1운동과 임시정부를 민주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임시정부를 민족통일전선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는 변화를 보였다. 역사학계의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학문적 진전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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