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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학계의 한국고대사 연구동향과 과제‒2000년 이후 연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search Trends and Future Tasks of Korean Ancient History in South and North Korean Academia‒Focusing on Research Since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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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덕재
소속 및 직함 단국대학교
발행기관 동양학연구원
학술지 동양학
권호사항 (7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73-214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한국고대사연구』   #『력사과학』   #동북공정   #『조선단대사』   #단군릉   #목간   #상고사논쟁   #전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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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고는 2000년 이후 남북한학계의 한국고대사 연구동향을 정리하고, 통일 이후 한국고대사연구의 과제를 간략하게 제시한 것이다. 2000년 이전까지 남한에서 삼국 가운데 신라사연구가 중심을 이루었다. 2004년과 2005년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고구려사연구가 활성화되었고, 2009년 이후에 충청과 경기지역의 발굴조사가 확대되고, 공주와 부여, 익산의 백제유적지구에 대한 정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백제사연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1990년 이래 북한에서는 고구려와 고조선, 발해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백제와 신라, 가야사연구는 등한시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력사과학』에 개재된 고대사 논문 가운데 고구려와 고조선, 발해사를 다룬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백제사 등을 다룬 논문이 매우 적었던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1993년 단군릉 발굴 이후, 단군이 기원전 30세기 초에 평양에서 고조선을 건국하였고, 기원전 1500년 무렵 전조선과 후조선의 교체기에 고대 노예소유자국가로서 구려와 부여, 진국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277년, 기원전 3세기 전엽, 기원전 1세기 말엽, 기원 1세기 초중엽, 기원 1세기 중엽경에 고구려와 부여, 백제, 신라, 가야가 중세 봉건국가로 발전하였다고 보았다. 북한에서는 고조선사를 서술하면서 남한에서 僞書라고 규정한 『규원사화』, 『단기고사』, 『단군세기』 등을 사료로서 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몽과 온조가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연대를 각기 기원전 277년, 기원전 258년이라고 수정한 다음, 이에 맞추어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 기록의 기년을 대폭 소급하여 새롭게 조정하였다. 후기신라사와 발해사연구는 맥락상으로 1980년대의 연구와 크게 달라진 측면을 발견할 수 없다. 남한에서 2000년대에 매년 300편 이상,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400여 편 이상, 2015년 이후에는 매년 500편 이상이 넘는 고대사 논문이 발표되었다. 따라서 2000년 이후 남한학계의 한국고대사 연구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몇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2000년 이후 남한학계의 연구성과를 정리하면, 첫 번째, 삼국 초기와 고조선, 가야, 부여, 가야의 정치체제를 부체제로 이해하는 연구가 증가하였다는 점, 두 번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고구려사와 발해사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는 점, 세 번째, 다량의 목간과 다수의 금석문이 새로 발견되면서 고대사연구의 지평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 네 번째, 고조선의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를 둘러싸고 이른바 상고사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이 와중에서 고대사학계에서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남한의 이른바 재야사학자들과 북한학계에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강조하면서 고대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향후 남북한 모두 ‘實事求是’와 탈민족주의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고대사상을 구축하고,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이 존중되는 학문 풍토를 정립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한계는 충분히 극복되리라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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