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국제상황의 변화로 인해 한국 정부는 위기를 맞이했다. 닉슨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경제와 안보를 모두 위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다른 한편으로 기회이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감축과 철수를 추진했던 닉슨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 정부에게 위기로 다가왔지만, 남북 간의 대화를 이끌어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미국의 대외 군사지출을 줄이려고 했던 미국의 정책과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한 남북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조응한 결과였다. 한반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중립화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남과 북은 모두 외교정책을 다변화하였고, 한국전쟁 이후 적대적이었던 국가들과의 접촉과 수교를 추진하였다. 7.4 공동성명은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남북 간의 합의였고, 1973년의 6.23 선언에서는 남과 북이 각각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평화공존의 가능성이 열렸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남과 북이 공히 군사비를 줄이면서 경제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었다. 이를 위해 한반도의 중립화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반도는 이러한 기회를 놓쳤다. 본고에서는 주로 분석한 남한 측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반공과 사회통제를 기반으로 했던 박정희 정부로서는 사회적 이완을 가져올 수 있는 남북 간의 대화와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이끌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반공을 포기한다면, 이는 곧 정권의 몰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1970년대에 실패했던 기회는 1990년대에 다시 한 번 재현되었지만, 민주화 이후에 맞이했던 두 번째 기회는 국내 여론의 악화로 인해 실패했다. 이러한 두 번에 걸친 실패는 국제적 전환기에 서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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