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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식민주의에 대응한 생활문화-초상사진-

A Living Culture Reacted against Modern Colonialism -Portrait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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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하
소속 및 직함 한국해양대학교
발행기관 실천민속학회
학술지 실천민속학 연구
권호사항 3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45-171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초상사진   #근대식민주의   #‘어진영’   #가족사진   #생활문화   #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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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최근까지 대청마루나 안방, 거실, 그리고 각종 관공서와 회사의 회의실, 응접실 등에 걸리던 초상사진의 연원과 내력을 근대기 일제의 식민주의의 영향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일제가 정치기술서 활용한 천황의 ‘어진영’ 보급제도가 대한제국 황제의 ‘어진’ 보급과 일반인에게서의 초상사진 유행과 상례에서의 영정사진 사용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가설 아래 논의를 전개시켰다. 메이지시대 일본은 자국 내에서 천황의 ‘어진영’을 숭배하도록 국민을 훈육하였으며 이를 식민지에서도 시행하여 근대식민주의를 파급시키고자 획책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제도를 참고하여 ‘어진’을 제작, 보급함으로써 독립성을 얻으려 했고 일반인들은 황제 ‘어진’의 소유로 독립에의 열망을 표현하여 했다. 그러나 조국이 멸망하기에 이르자 일반인들은 초상사진의 소유를 ‘존재 확인’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여 초상사진이 식민지에서의 계급적 불평등을 강요하고 체제에의 순응과 규율에의 순종을 부추기는 도구임을 알면서도 이를 생활문화로 정착시켜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을 대청마루에 게시하는 풍속을 정착시켰다. 이처럼 한국인은 근대식민주의에 대한 반응양식으로서 초상사진의 사용은 외세의 지배에 대한 독립의 의지를 드러내거나 근대식민주의 정치기술에 순응하는 한편으로 이를 적극 활용해 스스로 생활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실로 다양한 인식의 표현방식이었다. 이런 식민지 일반인의 생활방식이 비록 근대식민주의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여기서 상대적으로 더욱 주목하는 바는 식민지배자가 전해준 수단을 활용해 식민지배에 맞서는 ‘저항적 혼종’의 일환으로 생활에서의 주체성을 살려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처럼 국민과 식민지인을 훈육하려 했던 근대기 정치기술로서의 초상사진 보급은 지도자의 권위를 구축하려는 민족국가나 세습체계로 정권을 존속시키는 북한에서도 유사하게 시행되었다. 남한정부가 이승만을 위시한 대통령의 초상사진을 각급 기관과 학교에 게시하거나 김일성을 비롯한 지도자의 초상을 목숨을 걸고 지키거나 가정에까지 보존토록 장려하고 있다. 아울러 일제가 메이지시대 ‘국가가족주의’를 내걸고 천황일가의 사진을 보급하던 관행이 대한제국의 황실가족사진 보급으로 이어졌는데, 이 역시 독립된 국민국가에서 대통령의 가족사진을 제작해 일반인에 공개하며 국민을 가족의 일원으로 소환하는 정치기술로 답습되었다. 이런 국가적 정치기술은 일제시대 이래 일반인의 가정에서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을 대청마루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전해졌고, 국가지도자 가족의 사진을 보급하는 관행도 식민지에서 뿐 아니라 독립 이후의 가정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해 게시하는 풍속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이나 가족사진을 벽에 거는 관습은 근대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식민주의에 반응하는 양식으로서 이어져 내려오며 정착한 생활문화였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일반인들은 제국의 식민통치나 국민국가가 구사하는 훈육수단의 정치기술을 마지못해 수용하면서도 이를 도구나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가 생활의 주체임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한국의 현대민속으로서 생활문화가 지닌 특성이라 하겠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