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이 1990년대 한국과의 수교에 대해 극적인 태도 변화를 야기한 동인을 ‘북한요인’을 중심으로 추적했다. 즉 중국이 ‘북한요인’을 더 이상 수교의 절대적 장애로 인식하지 않게 된 과정을 국제체제, 한반도, 한중 양국의 국내정치 세 차원에서 검토하고, 이어서 수교 협상과정에서 ‘북한요인’이 어떻게 논의되는지를 복기했다.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경제협력선의 다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전략적 차원에서는 한반도에 ‘투 코리아(two Koreas)’ 정책을 관철시키고, 한반도의 남북한 양측과 동시에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과 입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 및 관계발전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환경 조성에 있어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역할을 기대했다. 이처럼 한중 양국은 ‘북한문제’에 있어서 수교 단계에서부터 전략적 동상이몽을 잉태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은 수교 이후 중국과의 비약적 관계발전에 고무되어 ‘북한문제’에서의 중국역할에 대한 기대를 확대하였다. 사드 갈등이 한중관계 전반을 압도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한 것도 결국 한중 양국이 ‘북한요인’에 대한 상이한 전략적 판단과 과잉기대에 기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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