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50년대 북한미술의 지형을 거시적, 미시적으로 분석하여 월북 후 정현웅이 북한 미술계에정착하는 과정과 이에 따른 작품활동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자의적, 타의적인 원인으로 월북을 했으며 정현웅처럼 전쟁기에 월북한 작가들은 이전부터 활동한 작가들에 비해 미술계에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현웅이 조선미술가동맹 출판화분과의 위원장으로 임명되기까지는 많은 과정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조선미술가동맹으로 진출했던 1950년대 중후반은 북한의 문예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문예계의 다양한분야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담론이 풍부하게 형성되었으며, 미술계에서는 북한미술의 고유성과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한 이론적, 방법론적 성찰이 이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정현웅이 조선미술가동맹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원인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술계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위해 본 논문에서는 정현웅이 월북 후 북한 미술계에 정착하는 과정과 조선미술가동맹으로 진출할 수있었던 배경을 역사적으로 종횡 분석하며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1950년대 초반 전쟁기의 문예방침을 통해 정현웅의 작품활동과 고구려 고분벽화모사작업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보았다. 이 과정에서 정현웅이 북한 미술계에서의 입지를 어떻게 넓혀갔는지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중후반은 그 결과로서 조선미술가동맹으로 진출했던 시기인만큼 보다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당시의 문예노선을 정리하며 미술계의지형 변화라는 흐름에서 정현웅의 작품을 해석해보았다. 특히 당시 문예총의 위원장을 역임하며 문예계에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한설야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것은 조선미술가동맹으로의 진출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의미한 분석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분벽화 모사작업의 재발견’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김일성의 유일지배체제와 이에 따른 문예노선의 변화 속에서 정현웅이출판화분과의 위원장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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