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작가동맹 소속 재북 작가 반디의 『고발』의 세 판본을 대상으로, 텍스트가 흘러가는 궤적을 쫓으며 (재)생산하는 북한 재현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였다. 『고발』은 국가, 언어, 담론을 횡단하며 흐르는 텍스트이고, 텍스트가 놓이는 환경에 따라다른 의미를 생산하기도 하고, 그 환경에 의해 텍스트가 변화하기도 하였다. 최초 출간본인 조갑제닷컴 판본의 경우, 『고발』은 반공서사로 해석되었다. 조갑제닷컴 판본의 『고발』은 ‘액자소설’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외화(발간사, 비화, 해설 등)–내화(소설)’의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텍스트 바깥에서는 ‘텍스트의 탈북기’와 반공이데올로기가 반복되었다. 한편, 『고발』은 20여개의 언어권으로 번역되어 나갔으며, 각종 문학상의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을 하기도 했다. 영국 PEN 번역상을 수상한 뒤 대중문예물 출판사 다산북스에서 재판된 『고발』은 기존의 조갑제닷컴 판본과 다른 ‘책’으로만들어졌다. 텍스트를 둘러싼 외화는 책 자체에서는 사라졌으나 마케팅 전략으로는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다산북스 판본은 반공서사를 지우고 북한 인권이라는 보편가치를 내세웠다. 정치성이 사라진 자리에 ‘문학성’을 강조했으며, ‘문학성’은 『고발』이 해외에서 받은 주목에 의해 보증되었다. 반면, 영역판 The Accusation은 표지, 광고 문구등 텍스트 바깥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고발』이 영어로 번역되고, 영미 저널과 출판시장에 놓이면서 생긴 변화 양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1)가난의 강조, 2)‘은밀한 독재자의 나라’ 이미지 (재)생산, 3)전체주의스펙타클의 강조이다. 한국어 판본과 차이를 보임에도 The Accusation은 ‘재북’ 작가의존재에 의해서 리얼리티를 획득했고, 이렇게 획득된 북한 ‘내부’의 사정은 거꾸로 ‘베일에 싸인 알 수 없는 나라’를 엿보는 불순한 호기심의 시선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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