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는 북한과 소련의 미술교류가 가장 활발하였던 시기였다. 정관철은 35년간 미술가동맹의 위원장을 역임하였던 화가로 북한화단의 변화를 대변해 준다. 정관철은 다른 북한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미술전람회, 소련미술을 소개하는 문헌, 소련화가의 방문 등을 통해 소련식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학습하고 이를 북한 미술에 맞게 변용하였다. 특히 원화를 보기 어려웠던 당시 『오고뇨크』 나 『이스크스트보』 등잡지의 삽도는 소련식 사실주의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정관철이 한국전쟁 시기 제작한 포스터<미제는 조선에서 물러나라>는 빅토르 이바노프의 1946년작 <범죄를 멈추라!>의 화면 구성을 따르고 있으며, 정관철의 1952년작 유화 <월가의 고용병>은 크리보노고프의 <항복>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소련정부가 파견한 화가 변월룡과의 만남은 소련식 기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정관철의대표작 <보천보의 횃불>은 1948년 제작되기 시작하여 1950년, 1955년, 1960년 재제작되었는데, 도상의원천은 레닌의 핀란드 역 앞 연설을 묘사한 이라클리 토이쩨의 <연설하는 레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957년 《1차 전련맹 소비에트대회》는 스탈린 사후 소련화단의 변모를 국제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후르쇼프의 노선을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맑스-레닌주의로의 재무장을 강조하였다. 정관철은 노동자들의 삶 속에 들어가 작품의 제재를 구할 것을 주장하며 <강철을 만드는 사람들> 등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1950년대 정관철의 작품은 소련과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그 향방을 민감하게 조정하였던 북한 미술계의 동향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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