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중공업 시대가 시작된다. 전 국토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완공되었고, 각 지방에는 대형 중공업 단지, 관광 단지 등 산업 단지가 건설되었다. ‘산업화’는 곧 ‘선진국’이 되는 길이었고, ‘개발’은 곧 정의였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화는 수많은 역사와 기억을 은폐하고 묻어버릴 때 가능한 것이었다. 1965년, 한일청구협정 이후 식민지의 전쟁동원과 일본군’위안부’의 기억은 공적 기억에서 지워졌다.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학살의 기억은 제주도가 ‘관광 단지’로 개발되면서 묻히게 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에는 ‘중공업 단지’가 건설되며 ‘빨갱이’의 지역에서 ‘반공과 산업화의 성지’로 거듭났다. 이처럼 산업화의 용광로는 식민지, 학살, 공산의 기억을 녹여버린 위에 건설되었다. 본 연구에서 지역의 서사를 규명하기 위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산업화이지만 이는 산업화 시기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 이전과 이후 지역이 표상되는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제’의 경우, 한국전쟁 시기에는 포로수용소가 배치되고 이북 피난민 등이 수용되면서 ‘공산’지역으로 표상이 되었다. 또한 포로수용소 내에서 북한 포로 간의 갈등이 격화되며 이는 ‘공산’이 ‘준동’하는 곳으로 여겨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1970년대에 조선산업기지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거제는 국가적 영웅인 ‘이순신’의 승전지라는 점이 적극 재조명되었고, ‘거북선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조선소 등의 중화학 산업화로 나라를 이끈 박정희’라는 상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공산’지역은 산업화를 거치며 ‘충향’으로 거듭나고, 이는 다시 ‘반공의 지역’으로 표상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과거 ‘공산’ ‘빨갱이’가 ‘죽여도 좋은 존재’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이제는 ‘산업화’와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노동자야말로 ‘죽여도 좋은 존재’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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