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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중반 고구려 국가 형성 연구와 사회성격 논쟁

The Historiography of Goguryeo’s State and Social Formation in the Early to Mid-20th Century

상세내역
저자 이정빈
소속 및 직함 경희대학교
발행기관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
권호사항 (8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35-167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씨족   #부족   #국가   #노예제   #봉건제   #식민주의   #이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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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오늘날 고구려사 연구의 토대가 마련된 것은 1920~1970년대였다. 연구의 주된 과제는 국가형성과 사회성격을 해명하는 데 있었다. 이 글은 연구 쟁점을 정리하고 사학사적 흐름을 살펴본 것이다. 국가형성 연구는 1920년대 5부(部)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였다. 사료 속의부를 씨족·부족의 혈연집단과 지연집단으로 구분하였고, 전자에서 후자로의변화를 통해 고대국가 형성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지연집단의 성립 시점을 상향하면서 지금의 통설이 기반을 마련하였다. 사회성격 연구는 1930년대 노예제의 성립을 검토하면서 시작하였는데, 노예제의 존부를 두고 논쟁이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노예제 사회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봉건사회로 이행하였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1960년대 전반 북한 학계는 고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이를 계승한 고구려를 봉건제 사회로 규정하며일국사의 발전단계론을 확립하였다. 현재 북한 학계의 통설이 윤곽을 잡은 것이다. 일제시기 일본인 역사학자의 연구는 일본사를 기준에 두고 고구려의 발전을늦추어보고자 한 경향이 있었다. 원시시회의 유제가 강고히 지속되었다고 하였고, 한(漢)의 영향을 크게 강조하였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이었다. 한국인 역사학자는 그에 대한 비판에 주력하였다. 해방 이후 분단으로남·북한은 연구 방법과 시각에 차이를 보였지만, 모두 식민주의를 넘어 한국사의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였다. 노선은 달랐을지언정 추구한 바는 같았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