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만 해도 미국, 한국, 일본은 함께 힘을 합쳐 같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 32년간 연구 기간을 통틀어 볼 때도 이처럼 굳건한 3국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사석에서 앞으로 괴로움에 술을 많이 마실 날이 올 수 있으니까 오늘은 축하주라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농담을 자주했다. 괴로운 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2024년 9월까지만해도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미국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 시기 한일 양국 정부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 방향성이 올바르다는 확신 속에 강력한 동맹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미국이 동맹국과 공식 조약 이행, 약속된 주둔 병력 유지, 전방 배치된 미군을 통한 동맹국 보호 등 구체적인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할 수 있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미국 전문가들이 향후 미국 정책방향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조기 총선으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과반의석을 상실하게 되었다. 신임 총리 이시바 시게루 입지는 위축되어 있고 소수 정부 수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일본 국정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추진 속도는 느리고 그 내용은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시바는 정부 모든 문제에 대해 야당 동의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 상황은 사뭇 다르다. 12월 초 위기가 있었지만 신속하게 정상화되었다. 한국이 헌법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은 또다른 정치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야당은 이제 단순히 대통령의 반헌법적 조치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 질서 전반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난 2년간 정책기조가 무산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정책이 수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국제정세에서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역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 한국, 일본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북한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미래는 암울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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